일상을 새롭게 3Renew Posewin 20180214
어제는 친구와 보이차를 마시며 "생각과 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친구가 말합니다.
오랜 만에 좋은 보이차 마시고 싶네...
작년 겨울 제자에게 선물로 주려고 보관 했던 차가
떠올랐습니다.
18년 동안 자연의 기운을 먹고 오묘한 화학 작용을
일으킨 결과 새로운 물질로 다시 태어난 보이차...
깨끗하게 건창된 차라서 차향과 풍미가 일급품...
가격 또한 매우 놀랄 만하지만 돈이 아깝지 않은 차.
와~ 차 좋다...
연신 감탄사를 주니 "나" 또한 괜히 어깨가 으쓱~
순간 스치는 것이 있었는데 으쓱한 것은 "나"이고
보면 일어난 생각이 그렇게 만든것...
저녁 먹으며 이야기했던 생각과 나에 관한 어떤
단초를 발견한 느낌...
우리 이야기의 중심은 "나"라는 것이 생각을 만들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생각이 나를 만들고 있는 것인지...
사람들은 내가 주체이고 그러한 내가 생각을 만들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새롭게 발견된 정황과 과학적 성과에 따르면
생각이 나를 만들고 있다는 가능성이 높은 증거들...
나라고 확신했던 주체가 결국은 생각의 결과 부산불로
나타나는 한시적 정신 신체적 특질에 불과하다...
멀쩡한 인본주의자가 공산주의자로 변화 될 수 있고
흉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으로 인성이 변화되는 것은
생각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생각이란 어디에 오고 있는 것인지...
자기 굴레를 만들고 있는 생각이 어떤 방식으로 그
패턴을 벗어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중요합니다.
핵심 포인트는 몸이 생각을 만들고 있다는 정의와 생각이
나를 만들고 있다는 정의는 충돌하지 않는 다는 것...
몸화 되었다는 의미를 나와 몸을 일대일 대응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됩니다.
나를 만들고 있는 생각이란 주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몸철학
적 관련성은 별개의 영역입니다.
생각에 감정을 덧씌우면 사물은 왜곡되고 지금의 나 또한 왜
곡되고 과거의 기억 조차 달라집니다.
이것은 지구상에서 정신의 최고봉에 도달했다는 우월한 생물
인간의 치명적 오류입니다.
사회체계와 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이란 결국 잠정적으로 구성
된 필요조건 입니다.
등을 도닥이고 매를 맞기도 하고 때리고도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이 잠정적 약속에 불과한 가치체계의 정체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절대성과 항구성도 찾을 수 없습니다.
연꽃의 가치는 연꽃의 청아함에 있지 않고 못이란 조화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상대성을 이해한다고 합니다.
연꽃 아래 탁류는 분리할 수 없는 존재의 역할을 하고 있어서
깨끗함의 공식으로 물을 정화하면 연꽃은 죽고 못은 황량하게
변해 버립니다.
세계는 생각으로 청과 탁이란 단순한 이분법으로 나누기에 너무
크고 깊으며 오묘합니다.
노자는 道를 道라고 하는 순간 이미 그것은 常道가 아니라고 했고
붓다가 깨달았던 나라고 할만한 것은 어디에도 발견할 수 없었다는
수행결어 또한 같은 맥락의 이야기...
생각이 나를 만들고 나란 생각에 의해서 만들어진 정신적 특성이고
그것을 모르고 굴레화 된 생각으로 오용된 정신적 특성을 강화하는
행위의 반복을 무지의 뜻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지금 "나"라고 확신하는 것들에 대하여 감정을 배제하고 일어난 것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 이것이 바로 지혜의 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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