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새롭게 3 Renew Posewin 20180713
일반적으로 다치거나 부상을 입는다는 것은
외부로부터 가해진 물리적, 정신적 힘에 의한
것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형태의 부상이 있는데 이것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수련후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를 해보니 외부에
요인으로 다치는 사람보다는 스스로 다치는 사람
들이 너무 많다는 발견...
스스로 다치는 사람들 그것도 매일 매일 다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현실과 이상의 문제가 충돌할
때입니다.
자존심은 높지만 지금 나의 낮은 경험들은 스스로
상처를 주고 있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사회적 지위, 충분한 돈, 충분한 존중감등...
나는 이런 사람인데 나를 알아주지 않다니 기분이
나쁘고...서럽고...더럽고...도망가고 싶고...
예전에 혜민스님이란 분이 자신의 책이 베스트에
오르고 대형서점에 들려야 할 상황에서 자신을
알아볼 사람들에 기대반 부담반이 되었는데 고민
하다가 서점에 들리니 아무도 몰라보고, 심지어
계산대 직원조차 몰라 보더라는 이야기...
자신의 높은 자존감과 낮은 현실에서 발생하고 있
는 문제는 어떤 두려움이 나를 잡고 있는 상태...
독일에서 철학시간에 공부했던 비슷한 사례가 있었
습니다.
조금 심각한 주제로 사람이 자살을 하는 원인을 분석
한 것입니다... 스스로 다치게하는 끝판왕 자살...
우리가 생각하듯 나 모든거 내려놓고 먼저 간다가 아닌
난 마지막까지 인정할 수 없어 라고... 최후까지 허용을
거부한 무의식의 역동이 자살이라는 것입니다.
이가 썩을 것이 걱정되어 아기에게 초코렛을 주지 않는데
나중에 크게 울어버립니다.
어떤 아이는 부모가 달래며 초코렛을 주면 금방 뚝 그치고
역시 그렇지 하며 헤~ 헤~ 하지만 어떤 아이는 이젠 초코렛
따위는 필요가 없다구 하면서 훽~ 집어던지고 서럽게 울어
버립니다.
허용하는 순간 새로운 문이 열리지만 이미 에고가 굳어
스스로 다칠망정 굳게 마음의 문을 닫어버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삶의 유연성이란 초코렛을 주고 빼았는 연속된 경험에서
웃고 울어야 할 적정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그 전제는 스스로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경험을 지혜롭게
수용하는 허용의 문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