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새롭게 3Renew Posewin 20180629
무한이란 정의는 끝을 가늠할 수 없다는 정도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무한을 이해하면서 끝을 가늠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은 이미 직선시간론에 근거를 둔 것이다.
무한의 이해는 시간론보다 존재론에서 다루어야할
문제이다.
있음은 없음을 뿌리로 드러나고 있는 현상이고
없음은 있음의 어머니이다.
본질을 이해하고 개별의 모습은 완전하지만 개별에
맞추어진 본질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관습적인 실제는 실존에 관하여
너무나 우세한 확신을 주고 있다...
지난 100년 가깝게 극소립자를 연구한 결과는 우리가
믿고 싶어하는 고유한 존재의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어제 연구소에서 독일이 한국에 이길 확률이 99%이고
한국이 독일에 승리할 확률이 1%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이 뒤집힌 결과를 두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중국에 축구팬들이 독일에 거액의 돈을 걸었는데 결과는
완전히 다르게 드러나 패가망신한 것으로 시끄럽습니다.
참... 요지경 같은 세상입니다.
이것은 익숙한 결정론적 세계관에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
낸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저 기적이라고 치부할 뿐입니다.
삶속에서 세계관의 문제들...
누구나 경험하는 삶속에서 죽을 것 같은 절망상태...
그때 느끼는 절망의 깊이를 결정하는 것이 세계관이란 깊은
함정이고 고립된 함정에서 빠져 나올 동아줄 역시 세계관
입니다.
저녁수련이 끝나고 한 수련생이 자기 무의식을 바라본 경험을
말합니다...
" 선생님 방을 치워 놓으면 누군가 금세 방을 더럽혀 놓았는데
그게 누군가 세심하게 관찰해보니 저였어요..."
" 예전에는 모르고 살았는데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사람은 실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화되면서 자신을 바로 볼
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낡은 세계관을 버리고 나니 존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열린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관의 변화에 관한 그동안의 사례중 작은 부분이며
자신의 삶이 변화되고 발전되고 훗날 연구소와 인연이 좋은
추억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 보이거나 들리는 현실은 모두 확정적이지도 실재하지도 않다
그것들은 모두 가능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는데
마치 기막힌 마술쇼를 보는 것같다. " - 아슈바고샤 -